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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세스칸스

30대 초중반의 나이를 가진 성인이라면(지금의 나) 어릴 적 TV에서 즐겨 보았던 '플란다스의 개'라는 장편 만화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어린 소년 네로와 늙은 개 파트라슈의 우정을 눈물겹도록 진한 감동으로 나타낸 만화영화이다. 풍차 마을을 배경으로 드넓은 목초지와 젖을 짜는 네로의 할아버지, 파트라슈와 네로가 끌고 가는 우유 실은 달구.. 당시에는 TV 장면이 모두 신기하고 이국적인 모 습으로 비추어진 게 사실이다. 잔세스칸스 풍차 마을은 우리를 그런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데리 고 간다. 내 마음에 아직도 그때의 진한 감동이 마 음 한구석에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암스테르담 중 앙역을 떠나 알크마르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지나 네 번째인 쿠그잔디크 (Koog Zandik) 역에서 내려 마을 첫 번째 골목을 지나 다리를 건너 풍차 마을로 들어갔다.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동력을 얻어내는 장치인 풍차의 기 원은 원래 고대 페르시아와 터키 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낮은 곳에 있는 물을 올리는 데 사용하기 위해 발전한 풍차는 11세기부터 유럽으로 전해져서 국토가 해면보다 낮아 배 수가 필요한 네덜란드에서 크게 발달하게 된 것이다. 수차의 발달에 이어 19세기 증기 기관 의 출현으로 풍차의 입지는 점차 좁혀졌지만 이곳 잔세스칸스만큼은 아직도 풍차를 사용 하는 농가가 많다. 이곳의 풍차는 대략 열 개 안팎 주변 마음의 풍차를 함하면 할씬 많다. 열 개에서 아직도 겨자를 빻고 있는 풍차는 1786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밖에 제재용으로 쓰이는 풍차, 광물 이나 나무 등을 빻고 도료를 만드는 풍차, 식용유를 만드는 풍차도 있다. 어느 것은 400년 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19세기만 해도 700개 넘는 풍차가 있었다고 한다. 풍차 마을이라는 명성도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오늘날에는 관광지로 그 명 생을 더하고 있지만 전원적인 목가적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마스트리흐트

'네덜란드의 꼬랑지라는 표현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지도를 잘 살펴보면 실제로 남동부 아래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림버그(nbang) 라는 이름으로 독일과 벨기에에 둘러싸인 지방이다. 마스 트리흐트는 인구 11만 명의 작은 도시로 림버그 지방의 교통과 문화 중심지이다. 유럽의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마스트리흐트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1981년 12월 유럽 공동체(EC) 국가의 정상 회의에서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합의로 이끈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바로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이는 유럽연합 (EU) 탄생과 유럽의 화폐 단일화의 초석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바쁜 유럽 일정에도 이 도시를 들러야겠다고 마음먹 은 것은 본네판텐 미술관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도시 분위기는 평온하고 화 사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마스트리 흐트야말로 중부 유럽의 가려진 작은 별 같은 존재였 다. 네덜란드를 소개하는 작은 안내 책자에 쓴 문구 '마스트리흐트에 가보지 않고서 네덜란드를 다녀왔 다고 말하지 말라를 읽고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싶은 의문점이 먼저 떠올랐다. 마스트리흐트는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많은 면에서 네덜란 드의 매력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위에서 언급한 안내 문구를 해석할 수 있게 된 것 은 이 도시의 매력을 쭉 둘러보고 난 뒤다. 이토록 빛나는 별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유럽 여행객의 바쁜 발걸음을 나중에야 애석하게 바라보았다. 이 도시가 아름다운 것은 고 스란히 간직된 중세풍의 구시가 사이로 마스 강이 잔잔히 흐르고 그 위로 오래된 돌다리가 견고히 세워진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마스트리흐트 관광의 해 이라이트는 중세 성벽을 따라가며 구시가를 둘러보는 것, 오가는 유람선을 감상하며 강가 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것, 그리고 나무숲이 향내를 맡으며 성벽 사이로 난 오슬길을 선택 한다는 기분은 그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상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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